'한동안 연애 휴업 중입니다 - 다음에 돌아와 주세요 고객님' 이라고 써 붙였던 펫말을 돌려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은 오랜만이었다. 왜 그렇게 오랫동안 연애를 쉬었느냐고 하느냐면, 전남친만큼 좋은 사람이 없어서는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훨씬 더 멋지고, 잘생기고, 센스있고, 좋은 조건의 남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우선, 용기가 없었고, 둘째로 마음의...
썸남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썸남은 혹시 내가 모르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는지, 몇주 전부터 나에게 자주 카톡으로 입질을 해왔다. 지갑 새거 사야겠다. 아, 이거 내가 가지고 싶은 신발인데. 이 모자 어떻게 생각해? 나 이 팔찌 예쁜 것 같아. 나는 그럴 때마다 모르는 척 시침 뚝 떼고 '좀 별로지 않아? 색깔이 좀 애매해...' 라던가 '잘 모르겠어'...
"하준이 너 좋아하는거 알아?" 바람을 가르고 화살처럼 날라와 소정이의 마음에 꽃힌 말. 반사적으로 눈을 든 소정이의 일렁이는 눈동자에 담기는 하준이의 무덤덤한 듯한 눈길. 그 눈길에 담긴 감정을 읽기는 쉽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하준이 같은 애가 날 왜 좋아하니?" 소정이는 빠르게 눈길을 떨어트리며 교과서에 얼굴을 파묻었다. 자기도 모르는 사...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평소에도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던 남자친구가 외국으로 출장을 간 것은, 사실 아쉽다기 보다는 속이 다 후련한 일이었다. 그래서 당분간 얼굴 좀 안 봤으면 했다. 그런데 매일 연락을 했다. 안 해도 되는데, 매일 시도 때도 없이 연락해서 귀찮을 때도 있었다. 여하튼 대답은 했다. 하지만, 역시 남자친구와는 성상이 좋지 않았다. 너무 곱게...
모 아이돌은 약간은 아이돌 답지 않은 아이돌이었다. 예를 들어서, 관심을 받으면 귀가 빨개진 다는 사실이 그랬다. 또, 아무리 끈질긴 파파라치가 따라붙어도, 일주일에 한번쯤은 정체를 감추고 외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그랬다. 까칠한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는 선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삶에는 팬에게 허용된 영역과, 그 만의 영역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협...
※ 중후반 부에 폭력&선정적인 묘사가 있습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의 언덕 위에는 견고한 돌로 지어진 성이 있었습니다. 한때는 화려했고, 지금은 과거의 영광의 흔적을 군데군데 볼 수 있을 뿐이었지만, 몹시 아름다운 성이었지요. 고목과도 같은 거대하고 웅장한 성 아래에는 작고 앙증맞은 집들이 표고버섯들 처럼 옹기종기 모여 있었습니다. 마을사람들은 ...
※ 다소 폭력적&선정적인 장면 묘사가 있습니다. 대부분 소설 속 주인공이 그러하 듯이, 얼핏 보기에 데이지는 특별난 점이 없는 여자아이였다. 말라깽이에 작은 키, 지나치게 길고 가는 팔다리가 어딘가 부조화 스러운, 그렇고 그런 얼굴에 주근깨가 박혀 있는 갓 16살이 된 시골소녀였다. 그녀는 사람 눈을 빤히 쳐다보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럴 때면 눈을 ...
작년 여름이었다,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를 한 것은. 엄마는 저번에 살던 집주인과 집세를 거래 하려고 했으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동에 있던 새 아파트를 전세 냈다. 집은 꽤 잘 보존 되있었고, 집세는 싼 편이었다. 나는 세면대야에 꼭 맞는 금속 마개가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전에 살던 집에는 고무마개가 있었으나, 고양이가 장난 치...
미아가 철수를 만난 것은 아주 오래 전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는 그게 언제 였는지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철수는 그녀의 첫 걸음마를 보고, 아버지가 미아의 출산 소식을 듣고 병원을 찾아갔을 때, 같이 간 친구 인지도 모릅니다. 학예회에도 부모님 곁을 지키고, 초등학교 입학회때 바빠서 못 간 아버지 대신 와준 철수는, 그녀에게는 제 2의 아버지나 마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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